토템의 모델 1은 샤프한 해상력과 스테이징, 그리고 마이크로 다이내믹 능력이 뛰어난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골든 튜브 오디오의 프리·파워 앰프와 매칭이 좋았다. 때때로 번뜩이는 모델 1의 예기를 골든 튜브 오디오가 적당히 억제하면서 모델 1의 약점인 풍성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죄는 듯한 느낌을 많이 완화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매칭을 하면 스피커가 너무 불쌍해져서 이후의 매칭에서는 가급적 본래의 색깔을 살리는 데 주력, 첼로의 앙코르 모노럴 파워 앰프와 중매를 해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최근 바이와이어링 버전과 시그너처 버전이 나왔다고 하는데 더 좋아졌다고 하니 궁금해진다.

어쩌다가 동호회 한분이 토템 모델 1을 인수해가고 새로운 판을 짜야 되는 시기에 선택한 것은 참으로 자태가 고왔던 B&W의 실버 시그너처였다. 네트워크 박스가 별도로 제작된 데다가 순은선의 배선 및 스피커 케이블, 그리고 전용 스탠드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스피커였는데 트위터와 우퍼에 보호 그릴이 없어서 흠집이라도 날까봐 애지중지하면서 들여놓았다. B&W 스피커는 이전부터 801이나 802, 804 등을 사용하면서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었다고 자부했었는데 실버 시그너처는 처음부터 쉽게 친해지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밸런스는 잘 잡혀 있고 특이성향도 없는데도 항상 어딘가 욕구불만이 많은 것처럼 2%가 늘 부족한 상황이었다. 스레숄드 SA-4e도 들여다 놨다가 마크 레빈슨 23, 27, 29도 들어봤다가 결국은 전가의 보도마냥 첼로의 시스템으로 듣기는 했는데 다이내믹과 스테이징 능력은 매우 뛰어났지만 미세하게나마 고역의 개방감이 조금 모자란 듯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소형 스피커도 앰프 매칭 어렵다

다시 방황의 길(?)로 접어들 무렵 어쿠스틱 에너지 AE-1 시그너처를 실버 시그너처와 바꿔 버리고 AE-2를 메인으로 잠시 듣기 시작했다. AE-1 시그너처와는 달리 AE-2는 대편성까지 비교적 잘 소화하긴 했으나 너무 정직하게 들린다고 할까, 오디오 하는 재미가 별로 없었다. 반면 AE-1 시그너처는 고역에 머금은 화장기에 사운드 밸런스도 안정적이고 무엇보다도 내 귀에는 중립적으로 들렸다. 특히 앰프나 소스기기, 그리고 케이블의 교체에 따른 반응이 매우 신속하고 뚜렷하게 전달되어 지금까지도 애용하고 있는 기기이다. 이후 지인의 충고에 따라 바이와이어링 어댑터도 트랜스페어런트를 양도 받았는데, 이 케이블은 지금도 거실에서 맹활약 중이다.

북셀프로 메인 시스템으로 꾸리기는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이 나의 생각인데,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다. 크기는 작지만 중대형기에 필적할 만큼의 주변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고, 또 하나는 충분한 저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앰프, 게다가 능률까지 낮으면 대출력 앰프를 써야 하는 고충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셀프 스피커에서 앰프 매칭을 생각 이상으로 중시하는 것 같고, 성격상 튼튼한 스탠드가 필수적인데 타겟이나 리버맨 오디오의 스탠드의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아서 거의 중대형기에 들어가는 예산만큼의 경제력이 요구된다는 점도 어려운 점이 아닐까 싶다.

잠시 숨을 돌렸다가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던 중 한 지인의 집에서 첼로의 프리·파워 앰프에 크렐의 CD 플레이어에 매칭되어 들었던 사운드에 매료되어 선택한 스피커는 보체 디비나의 소프라노였다. 포컬제 역돔형 트위터에 스캔스피크의 우퍼를 사용한, 디자인이 약간 촌스러운 이 스피커는 광대한 스테이징 능력을 보여주고, 고역이 활짝 열려 있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 도입 초기 높이 올라가 있는 사운드 밸런스의 중심을 밑으로 내려서 안정감 있게 재생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고, 뻑뻑한 우퍼를 나긋나긋하게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였다.

소프라노 스피커를 위해서 무거운 타겟의 R6 스탠드를 고생고생해서 집으로 운반해오고 2층까지 낑낑대며 운반했던 기억이나 PC 동호회에서 시청회를 한다고 홍익대며 서강대로 들고 운반했던 기억들이 지금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무튼 소프라노라는 스피커는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뛰어난 스피커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깊이 있는 저역을 얻기는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보체 디비나에서는 바쏘라는 별도의 서브우퍼도 준비를 해놓고 있었던 것 같은데 도입을 할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바쏘+소프라노의 가격이 당시에 좋아하던 아발론이나 윌슨 오디오의 가격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지극히 비오디오적인 발상 때문에 도입을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바쏘+소프라노의 조합으로 아발론이나 윌슨 오디오의 사운드보다 더 멋있는 사운드를 낼 만한 실력도 없었고, 그럴 능력도 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서 아발론 스피커를 구매했던 것이 북셀프 스피커를 메인 시스템으로 끌어들이는 마지막 작업이었던 셈이다.

잠시 우스운 이야기를 하자면 북셀프를 메인으로 쓰면서 또 다른 북셀프를 서브로 쓰는 황당한 일도 있었는데(사실 나는 스피커 욕심이 꽤 많다) ATC의 SCM20의 소리에 반해서 재즈 재생에 좋다는 SCM10을 구입했던 적이 있었다.

워낙 능률이 낮은 놈이라 고민하던 차에 암크론의 파워 앰프에 물려서 듣고 있었는데 볼륨 미터가 특이한 앰프라 ∞와 0 사이의 레벨 설정에 헷갈리다 그만 우퍼를 날렸다. 어찌어찌 해서 수리를 한 후 들었던 SCM10은 능률은 매우 낮으나 10cm 남짓한 구경의 우퍼에서 밸런스가 잘 잡힌 차분하고 안정적인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는데 동생이 한번 또 날려먹고 하베스 HL-4도 망가뜨리고 해서 그냥 처분했던 일도 있었다.

세계는 넓고 스피커는 너무 많다

결혼을 해서 흔히 말하는 신접 생활을 해야 하는 시기가 내게도 찾아오게 되었는데 문제는 아발론을 중심으로 하는 메인 시스템을 가져다 놓을 만한 공간이 생각보다 없었다는 점에 사실은 매우 당혹스러웠다. 이 무렵에는 오디오에 대해서도 서서히 싫증이 나던 시기였고, 외적으로 매우 정신없이 보내던 시기라 음악을 들을 시간도 부족한 때였다. 결혼을 하니 왜 이리 돈 들어갈 데는 많고 써야 되는 곳도 많은지……. 내심으로는 저 공간에 딱 맞는 스피커 없을까를 물색하다가 맘 먹은 것이 ‘초심’으로 돌아가자라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으로 미션 M시리즈, 셀레스천 5, 보스 901V, ALR/ Jordan Entry S, 블루룸 미니포드, 하베스 콤팩트 등이 대충 기억나는 것들이다. 앰프는 아인슈타인의 앰프로 고정해 놓고 케이블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으로 매어 두고 시작했다. 대부분 숍에서 중고로 매입한 것들인데 닥치는 대로 일단 들여놓고(지금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엔트리급 모델을 섭렵(?)한다는 자세로 시작은 했는데 역시 세계는 넓고 스피커는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 시기에 딱 하나 눈에 뜨이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ALR/ Jordan의 엔트리 시리즈였다. AE-1보다도 더 작은 이 스피커는 물론 다이내믹이 제한되어 있고 꽤 큰 음량으로 듣지는 못했어도 침투력 있는 사운드는 호소력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때 사두었던 스피커들이 모두 본가에 쌓여 있어 어머님의 불평은 크셨지만 아버님은 좋아하셨던 것 같다.

최근에는 메인 시스템을 교체하느라 북셀프 스피커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줄어들었고, 노장이 다된 AE-1 시그너처도 여전히 활약을 하고 있으니 더더군다나 북셀프에 눈이 갈 리가 없었는데, 몇몇 잡지사에서 리뷰를 의뢰받게 된 기기들이 공교롭게도 또 북셀프 스피커였다. 사실 여력이 된다면 AE-1 시그너처는 다시 본가로 보내고 공예품 수준인 소누스 파베르의 과르네리 오마주나 다소 투박하지만 건실한 음을 들려주는 윌슨 베네시의 디스커버리, 음색은 조금 희생되지만 정말로 광활하고 깨끗한 음장을 보여주는 오디오 피직의 브릴론 혹은 브릴론 2 같은 제품을 점찍어 두고 있었는데 의외로 눈에 아니 귀가 관심을 가지는 스피커가 보였다. 첫 번째는 포커스 오디오의 FS688인데 스캔스피크의 리벌레이터 트위터와 이톤제 우퍼라는 호화스러운 유닛 구성에 차분하면서도 이쁜 중고역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두 번째는 시스템 오디오의 SA-2K 마스터라는 제품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메이커라 처음에는 홀대를 하였으나 특이성향이 없는 사운드에 고역의 개방감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펜오디오의 레벨 2가 있다. 비록 서브우퍼인 카라와의 매칭이었지만 나긋나긋하고(이견이 있겠지만) 차분한 음영이 돋보여서 일부러 다른 오디오 지인을 불러다 놓고 들어보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몇 가지 조언들

이렇듯 최근의 북셀프 스피커들은 개성이 강하고 터무니 없는 사운드 밸런스를 보여주는 스피커는 없는 것 같다. 흔히 말하는 하이엔드급 북셀프 스피커들도 사용자가 노력을 기울이기만 한다면 중·대형기에 필적할 만한 생생한 감동을 전해 줄 것이다. 비록 짧은 경력이긴 하지만 감히 고언을 전하고 싶다. 북셀프 스피커들을 써보거나 주변에서 사용하고 계신 분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첫째 저역에서의 불만을 느낀 나머지 오버 댐핑이 될 정도로 강력한 파워 앰프로 다스린다는 점이다. 사운드는 분명 훌륭하고 통제가 잘되어 있긴 하지만 억눌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낮은 출력이라도 전원부가 튼튼하고 수준 있는 앰프라면 출력 수치에 연연해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두 번째는 스피커를 세팅할 때 매우 튼튼한 스탠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액세서리를 취급하는 곳이 많아져서 스탠드를 구입하기도 쉽지만 지나가다 만져보면 너무 가볍거나 스탠드의 파이프들의 울림이 심하다. 가급적 무겁고 자체 울림이 적은 스탠드가 양질의 사운드를 보장해 주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공간의 활용 문제인데 스피커가 작다고 벽에 딱 붙여 두지 마시고 성인 한 명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스피커 주위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피커 사이에는 가급적 아무것도 두지 않는 것도 잊지 마시고……. 그러면 북셀프 스피커가 가진 최고의 장점을 선사해 줄 것이라 감히 단언한다.

두서없이 장황하게 적어 놓긴 했지만 오디오 하는 재미 중에 최고는 역시 스피커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이제 막 이 세계에 발을 담근 초보자들이나 한참 지금도 열애 중이신 오디오파일들의 관심사는 역시 좋은 스피커를 만나는 것이 아닐는지.

<착색없는 사운드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펜오디오의 레벨 2 스피커.>

<최근 국내에 소개된 아방스의 매그넘 12 스피커. 저음역의 표현이 풍부하여 청취공간을 크게 가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탠드 모양의 바리톤 서브우퍼 위에 장착된 보체 디비나 소프라노 스피커. 바리톤은 스탠드의 바닥 면에 우퍼가 장착되어 있다.>

<유려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으로 정평이 난 소누스 파베르의 과르네리 오마주 스피커.>

<와피데일 다이아몬드 4 스피커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