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LAND CDA823 리뷰 내용
그대여!상큼한 음향 풍경을 보았는가!
최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아날로그 붐은 역사의 아이러니처럼 보인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필자가 CD를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CD가 등장한 지 10년이 되어 가던 당시까지 아날로그 투사 행세를 하기는 했지만, 필자가 CD로 전환하지 않았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80년대 중반에 와서야 본궤도를 올랐던 아날로그 음향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십수 년 동안의 고생 끝에 완성한 아날로그를 어떵게 포기하란 말인가?
그에 비하면 당시의 CD음향은 거의 재앙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최근 나타나고 있는 복고 취향을 보면서 1980년대 후반의 재판(再版)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면 필자의 독단이 심한 것일까?
이제야 CD를 제대로 즐길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벌써 파장 분위기인지 한쪽에서는 SACD를 들이밀어 대면서 CD포맷의 퇴장을 재촉하는 듯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갑자기 LP찬가가 들려오고 있으니, 막차도 타지 못해서 언제나 시류에 억지로 끌려가는 필자의 신세가 처량할 뿐이다.
그러나 지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음반 리뷰를 해온 경험으로 말해 보면 요즘 발매되는 일반 CD와 플레이어의 수준은 만만히 볼 것이 절대 아니다.
최고의 음향 재생에서는 지금도 아날로그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아낌없이 돈을 투입할 여건만 된다면 최고의 아날로그 재생에 근접한 음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최근의 CD 음향이다.
그런데 벌써 파장이라니! 또 한숨이 나온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한참 복잡하던차에 만난 플레이어가 바로 코플랜드의 CDA823 CD플레이어다. 판매가가 400만 원대라고 하니 요즘의 가격 기준으로 보면 중급 기종이라고 하면 좋을 듯한 이 플레이어를 이리저리 관찰해 가는 과정에서, 수년 전 본지에 필자가 쓴 코플랜드의 인티앰프 CSA8에 대한 리뷰가 떠올랐다.
잠시 그 글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밝은 색조와 자연스러운 다이내믹 사이의 건강한 조화를 추구하는 재생음을 들려주고 있다. 이 기기에서는 무엇하나 애매할 것도 모호할 것도 없는 윤곽이 분명한 음향이 살아나고 있다. ·
··한 마디로 이 기기는 또렷한 이미지의 악음과 율동 넘치는 산뜻한 흐름을 중시하는 재생음을 지향하고 있다.” 앰프에 대한 글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평가 내용은 CDA823으로 그대로 옮겨 와도 큰 틀에서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기에서도 코플랜드가 추구하는 밝은 음색과 산뜻한 흐름이 보기 좋게 어우러진 명쾌하면서도 화사한 표정의 음향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CDA823의 재생음을 꼼꼼히 점검해 보면 그 동안 코플랜드가 걸어 온 궤적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기기에서 눈여겨 볼 것은 코플랜드 특유의 밝은 음색을 그대로 유지하고는 있지만 다소 소극적으로 바뀐 듯한 표정의 음향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다소 얌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신호의 순도가 높아질 때 자주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실제로 이 기기의 재생음은 선이 굵은 표현력을 드러내기보다는,악음의 두께가 다소 얇은 듯하지만, 투명한 음향 배경 속에서 세부 표정이 섬세한 이미지로 떠오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모습은 알프레드 브렌델과 사이먼 래틀이 함께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Philps 462 781-2),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DG 423 656-2), 크리스티안 침머만이 피아노와 지휘를 맡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DG 463 562-2)등의 녹음에서 잘 살아난다.
특히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에서는 유럽쳄버 오케스트라가 보여주는 현악 파트의 미묘한 표정이 살포시 떠오르고 있으며, 침머만의 협주곡 녹음에서는 현악 파트가 보여주는 감각적인 슬라이드가 자극적이지 않은 표정으로 사뿐하게 살아나고 있다. 한 마디로 밝고 섬세하지만, 천박해지지 않는 재생음이 이 기기에서 잘 살아나고 있다.
이러한 음향 특성은 보다 폭넓은 다이내믹레인지, 보다 빠른 D/A변환 속도, 그리고 잡음의 최소화를 위하여 이중 차동(差動) 방식의 24비트 D/A컨버터를 사용하는 것과 큰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아날로그 출력에서 나타나는 에너지와 투명도의 손실을 막기 위하여 192kHz로 오버샘플링을 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음향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 결과 이 기기의 제품음에서는 공간감이 상당히 확장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으며, 악음의 흐름과 페이스 또한 절도가 넘치면서 안정감이 넘치는 모습이 살아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 기기의 약점은 무엇인가? 이 기기의 재생음에서 가장 먼저 지적할 것은 광활한 공간감을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신호의 지속력이 다소 떨어지고 텍스처가 다소 얇은 쪽으로 흐르면서, 악음에 실려야 할 추진력과 깊이가 부족해지는 문제점이다.
이런 모습은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의 피아노 반주로 존비커스가 낭송 연기를 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멜로드라마 ‘이녹 아든’(VAI Audio VAIA 1179-2)에서 나타난다. 비커스 음성의 공명과 이탈감을 적절히 살려내지 못하고, 치찰음 또한 평면적으로 흐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침머만의 쇼팽 협주곡의 경우 고음역으로 올라가면서 피아노의 타건이 다소 얇아지고 가벼운 경향을 보이면서 악음에 실려야 할 표정이 약해지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두께가 덜한 텍스처와 악음에 무게가 덜 실리는 문제점은 오스모 벤스케가 지휘하는 닐센의 <교향곡 5번>(BIS BIS-CD-1289) 녹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온화한 현악 앙상블과 타악기가 동시에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이 기기는 청명한 공간감과 자연스러운 잔향을 보여 주지만 추진력과 타악기의 타격음이 다소 부족해지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밝은 음색을 배경으로 섬세하면서도 투명한 세부 표정을 살려내는 이 기기의 장점에 비하면 이러한 약점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필자가 사용자라면 이러한 문제점에 얽매이기보다는 이 기기의 밝은 음색과 섬세한 표현력에 초점을 맞추면서 단점을 줄여가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적절한 케이블의 선정과 무게감이 있는 앰프를 골라 줌으로써 이러한 문제점은 얼마간 해소할수 있을 것 같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오디오 기기가 밝은 색조를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이 결코 아니다.
이렇게 보면 이 기기는 400만원대의 제품에서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완성도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악음의 추진력과 중랑감이 다소 부족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이러한 문제점은 하이든이나 모차르트같은 경쾌함과 우아함을 선호하는 애호가에게는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될 여지가 더 많다. 어두운 음색과 올이 굵은 선율선으로 그려가는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급 기종에서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해호가들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정교하지만 경질로 흐르지 않는 섬세한 표현력이 살아 있고, 밝지만 천박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간직한 음향! 바로 이것이 코플랜드의 CD플래이어 CDA823의 음향이다.
[박성수] [월간 오디오 9월호 발췌] |
[신제품]코플랜드 CDA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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